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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휴먼터치] ‘기다려, 가을!’ #정재훈 #꿈 #두산우승
기사입력 2016.09.22 07:04:27 | 최종수정 2016.09.22 08: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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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그 공은 그가 25년 야구하는 동안 처음 몸에 맞아 본 공이었다. 아마와 프로 시절을 통틀어 어쩌면 신기하게도 투수 정재훈(36·두산)은 발뒤꿈치, 혹은 발등 한 번 타구에 스치듯 맞아본 적조차 없었다.

그 때 그는 이제껏 느껴본 가장 강렬한 통증을 맛봤다. 지난달 3일 잠실 LG전 8회. 정재훈이 박용택(LG)의 타구를 오른 팔에 맞고 정규시즌을 마감했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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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골절상 이후 한달반, 수술후 빠른 회복과 순조로운 재활을 보이고 있는 정재훈은 두산의 한국시리즈에서 마운드 복귀를 꿈꾸고 있다. 사진=이승민 기자

“피할 수도, 잡을 수도 있었던 타구였습니다. 눈 깜빡하던 찰나에 맞았죠. 너무 아팠지만, 왼손으로도 공을 잡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마침 새 글러브를 끼고 있어서 왼손도 빨리 빼지 못했죠.”

평소 타구를 피하는 데도,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데도 자신감이 넉넉했던 터라 그 장면에 대한 아쉬움이 한동안 뼈만큼 아팠다. 그러나 지금은 불운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차분히 곱씹어보니 다행인 부분도 많습니다. 만약 더 빨리 다쳤다면 팀의 레이스에 더 크게 부담이 됐을 것도 같고, 반대로 더 늦게 다쳤다면 한국시리즈에 복귀할 희망이 아예 힘들었을 수도 있고…….”

뼛조각이나 잔금 없이 깨끗하게 사선으로만 금이 간 골절도 천만다행이었다. 암담했던 통증은 뼈가 붙고 나자 말끔하게 사라졌다. 팬들은 물론,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회복이 빠르다. 재활 피칭 프로그램을 시작한 정재훈은 현재 45m 까지 투구 거리를 늘렸다. 다음 주말쯤에는 불펜피칭을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후 연습경기나 교육리그에서 두어 차례 실전 등판을 치르면 10월 넷째 주 개막이 유력한 한국시리즈에서 마운드 복귀를 꿈꿀 수 있다.

“3~4년쯤 전부터는 개인기록 이나 타이틀에 대한 욕심이 거의 사라졌다”는 그는 자신의 통산 세이브 수를 떠올리지 못한다. 간절한 단 하나의 꿈은 한국시리즈 우승. 두산 유니폼을 입고 준우승만 네 차례 겪었던 그 무대에서 최후의 승자로 남는 감격을 꿈꾼다.

13년 프로 선수 생활동안 정재훈이 베어스를 떠나있었던 유일한 시즌, 지난해 가을에 두산은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챔프에 올랐다. “너무 부러웠던 마음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진심으로 기뻤고 축하했습니다. 두산 식구들이 얼마나 그 우승에 목말랐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남’인 듯, ‘남’이 아닌 마음으로 지켜봤던 드라마. 이번 가을에는 그의 것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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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은 리그 홀드 1위를 달리고 있던 지난달 3일 LG전에서 8회 박용택(LG)의 타구를 오른팔에 맞은 뒤 정규시즌을 끝냈다. 그 순간의 통증은 이제껏 처음 경험해본 것이었다. 사진=김재현 기자

21년만의 페넌트레이스 1위 확정이 코앞인 두산은 올해 10승부터 80승까지 8개의 포스트를 모두 가장 먼저 통과했다. ‘독주 베어스’으로 기억될 2016년 두산의 페넌트레이스에서 정재훈은 (마지막 두 달을 뛰지 못하고도) 기적의 밑그림을 그려낸 ‘일등공신’ 중 한명이다. 7월말까지 개막 넉 달 동안 45경기서 1승2세이브(5패) 23홀드를 책임졌다. 기대를 뛰어넘는 베테랑의 맹활약은 시즌 전 아무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두산의 독주 레이스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가혹한 상황, 꽤 부담스러운 연투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더니 대뜸 단어를 고쳐준다.

“릴리프로 올라가면서 가혹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주자를 채운 위기 상황일수록 내가 믿음을 받았다,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에 더욱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런 상황에 올라가고 싶은 투수가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기도 하고요.”

짧고 굵게 집중하고, 경기와 긴장을 즐긴다. 단단한 ‘클로저 멘탈’이다.

“릴리프 투수는 나 혼자 강할 수 없습니다. 팀과 불펜이 함께 강해져야 꾸준한 기회가 생기고 등판간격, 투구수, 기록도 관리할 수 있죠.”

그래서 두산의 강한 타자들, 그가 이탈한 마운드를 튼튼하게 채우고 지켜준 투수 후배들, 구단과 코칭스태프, 선수들이 함께 마무리하고 있는 한국시리즈 직행 시나리오가 모두 고맙다.

표정이 많지 않아 정적인 성격으로 보이지만, 정재훈은 ‘열정투수’다. 자신이 경기를 뛰지 못할 때는 “투수가 끝내기홈런을 맞고 고개를 떨어뜨리는 모습을 봐도 그 감정까지 부러울 만큼” 늘 마운드 위를 열망한다. 그를 불러줄 마운드, 그가 이길 수 있는 승부가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선수 생활을 완주할 욕심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한 이후 그는 인생에서 거의 다른 선택지를 가져본 적이 없다. 온통 야구 선수로서 할 일, 주어진 일에만 집중했다. 이제 선수 생활의 후반기에 접어들고 보니 “앞으로는 여러 선택,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싶다”고.

가끔은 학생 선수 시절, 다른 공부도 좀 더 챙겨 배울 수 있는 환경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어린 후배들에게는 그가 가지지 못했던 ‘선택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선배들이 될 후배들이 그 자신보다는 좀 더 충실한 야구 선수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는 이미 좋은 야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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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은 정재훈의 간절한 꿈이다. 마지막 순간에 패자로 남아야하는 KS 준우승만 네차례 경험한 정재훈은 지난해 동료들의 KS 우승을 롯데에서 지켜봤다. 사진=옥영화 기자

한창 바빴던 시즌 중에는 7살 첫딸 아연양과 네 살배기 아들 이도군이 늘 보고 싶어하던 ‘인기만점’ 아빠였다. 그러나 부상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지난 한달 반 동안 아빠 정재훈의 인기는 뚝 떨어졌다. “가끔 볼 때는 잘 놀아줬는데, 애들을 길게 보게 되니까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더라”는 항변. 아무쪼록 건강한 재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시리즈에서 꼭 소중한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아빠 경기를 챙겨보는 두 아이의 열렬한 응원과 인기를 가장 빨리 만회할 방법일 테니 말이다.

얼마 전 귀가하는 차 속에서 문득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울컥 뜨끈해지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쯤 되면 ‘중증 바라기’? 그러니까 한 달 뒤, 이 가을의 끝자락에서 (두산 팬들의 행복 시나리오가 들어맞으면) 어쩌면 정재훈은 ‘울 수도 있다’.

[chicleo@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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