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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휴먼터치] ‘열린마음’ LG 이병규 “구단의 구상 듣고 싶다”
기사입력 2016.11.08 06:18:48 | 최종수정 2016.11.08 08: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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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지난 한 시즌 내내 그는 말을 아꼈지만, 딱히 오해를 받았던 것 같진 않다.

LG ‘적토마’ 이병규(42·9번)는 늘 잠실구장으로 돌아오고 싶었고, 퓨처스리그 47경기에서 4할타(147타수59안타)를 휘두르며 의욕을 보였다. 행동으로 드러났던 그의 의지는 누가 봐도 명백했다.

개막 후 191일을 기다려 정규시즌 최종전이었던 지난달 8일 두산전에서 주어졌던 단 하루의 콜업. 이병규는 0-5로 뒤지던 4회 2사1,2루서 대타로 나서 두산 니퍼트에게 2구째 좌전안타를 때려냈다. ‘1경기 1타수 1안타’. 타격왕 2차례, 최다안타 1위 4차례, 득점 1위 한차례를 차지했던 통산 2000안타 타자의 KBO 17번째 시즌 성적표는 그렇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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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이병규는 지난달 8일 두산과의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이번 시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잠실구장 LG 팬들 앞에 섰다. 사진=김재현 기자

“이제는 구단이 제게 준비한, 제시하는 미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모습의 이병규를 바라는지…….”

시즌 전 구단과 감독에게 부탁을 했다. ‘도와달라’고 했다. 불혹의 타자는 선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 리그에선 그에게 오직 한 벌의 유니폼이었던 LG 저지와 정말 찐하게, 최선을 다해 이별하고 싶었다. 힘을 낼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꿈꿨으나 결과적으로 그의 바람은 (오해받지 않았지만) 응답받지 못했다.

섭섭함이, 실망감이 없다면 거짓이 된다. 그러나 이병규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이제 구단의 구상을 궁금해 했다. 데뷔 스무 해를 지나는 동안 함께 웃고 울고 뛰었던 LG이기에 구단도 열심히 설계하는 ‘이병규의 미래’가 있으리라 믿고 있는 모습이다.

굳이 자신의 이야기로 한정하지 않으면, 이병규는 선수의 은퇴와 구단의 리빌딩에 대해 조목조목 소신 있게 논하는 베테랑 선수다.

“모든 선수에겐 은퇴 시기가 오고, 모든 구단에겐 살아 숨 쉬는 선수단이 필요하다”는 그는 “프랜차이즈 스타와 구단이 잘 헤어지기 위해서는 ‘플랜’과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은퇴 시점과 구단이 바라는 은퇴 시점은 자주 다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생각이 맞다는 고집을 버리고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해 함께 ‘은퇴계획’을 만들어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느 해 돌발적으로 은퇴를 강요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은퇴 시점을 논의하고 선수 생활의 후회 없는 마무리를 도와주는 구단의 모습이 소망스럽다는 생각이다. “은퇴 시점에 합의하지 못할 때 서로가 타협할 만한 기준을 미리 정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단이 한 달? 최소한의 출전 기회를 보장하고 선수가 후배들과 공정한 경쟁으로 살아남는 다면 그에겐 더 기회를 주고, 그 (보장된) 기회를 버티지 못한다면 은퇴를 받아들이게 한다든지…….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마무리의 모습은 분명히 있습니다. 선수는 무작정 욕심이 아니고, 구단은 매정하지 않아야, 웃으며 유니폼을 벗을 수 있을 텐데요.”

어쩔 수 없는 경쟁 사회, 프로 야구판이라는 정글에서 모든 선수들에게 이런 배려는 힘들다. 그러나 오랜 시간 팬들과 함께 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베테랑 선수들에게라면 노력해볼 가치가 있는 마무리다. 그들은 유니폼을 벗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토리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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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과의 시즌 최종전에 출전한 뒤 이병규는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잠실구장의 LG 팬들에게 두 차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많은 감정과 그보다 더 많은 감사가 담긴 인사였다. 사진=김재현 기자

20년 전 신인 이병규는 ‘한국의 이치로’라고 그를 소개한 LG의 추임을 받으며 당시 역대 야수 최고 대우로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다. LG 트레이너들이 줄줄이 ‘차원이 다른 유연성’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던 그도 부상을 모르던 철인 같은 시절은 훌쩍 떠나보냈다. 이제는 조금 더 힘들어진 몸으로 조금 더 많이 노력하는 노장 선수인 그는 자주 가정적인 면모를 보이는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큰 아들 승민군(12)은 야구를 시작한지 채 한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 따라쟁이’인 아들은 왼쪽 타석에서 아빠랑 똑 닮은 ‘판박이’ 모습으로 배트를 휘두른다. 타격 자세가 영락없는 ‘이병규 미니미’다. 초등학교 5학년인 승민군은 지난 봄 (아빠의 추억도 깃든) 구리야구장에서 첫 야구경기에 출전했다. 주자를 꽉 채우고 대타로 나선 첫 타석에서 초구를 받아쳤고 좌중간 담장을 넘겼다. 생애 첫 타석 초구 그랜드슬램이라고? 누군가 만화에 그려 넣기에도 민망할 너무 만화 같은 설정이라 이병규는 어디에서 자랑도 많이 못했다.

‘야구신동’이 아니냐고 했더니 손사래다. 키가 크고 몸이 좋은 아들의 한 방에 금세 천재성을 확신하는 ‘고슴도치 아빠’는 아니다. 막상 아들에게 (취미를 넘어서) 야구 선수를 시키는 일도 못내 망설이고 있다. 야구를 너무 좋아하는 아들에겐 미안하지만, “아버지가 이병규라는 사실이 힘이 되는 시간보다 부담이 되는 시간이 더 많을 수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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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인 이병규의 큰 아들 승민군은 지난 4월 생애 첫 경기, 타석에서 초구 만루홈런을 때렸다. 아들이 천재라고 자랑하진 않지만, 아버지는 유니폼 입은 아들 모습과 첫 홈런공 사진을 휴대폰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사진=이병규 제공

사랑하는 아들에게 늘 힘이 되고 싶은 것처럼 오랫동안 그를 사랑해줬고 그가 의지했던 LG 와 LG 팬들에게도 이병규는 항상 그런 의미이고 싶다. 언제부턴가 어느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름이 부담으로 느껴진다면 우리는 그와 잘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선수가 은퇴를 결심하지 않는 것은 아직 스스로의 몸에 자신이 있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선수들은 열정과 욕심에 솔직하다. 구단은 으레 선수와의 이별을 예감하지만, 그가 필요한 동안에는 끝까지 솔직하지 못한 편이다. 그래서 자주 돌발적이고 매정하게 헤어짐을 선언하곤 한다. 스타와 팀이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보지 못하는 고통과 외면의 시간은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상처가 되곤 한다.

설득이 필요한 이들에게, 배려가 부족한 이들에게, 조금 더 길게 보는 용기와 조금 더 따뜻한 시선이 있기를 희망해본다. 우리가 사랑했던 스타들을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보내야 하는 그라운드. 그곳에 ‘아름다운 이별’이 조금 더 많아질 수 있도록.

[chicleo@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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