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 자연과학 엘리트에서 축구 덕후로…KBS 축구해설위원 한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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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자연과학 엘리트에서 축구 덕후로…KBS 축구해설위원 한준희
7살때 본 `차범근 해트트릭`에 꽂혀 `더 잘하는` 공부 접고 축구인생 골인
"팬들도 전문가 수준…내 욕심 줄이니 되레 해설이 살더라"
기사입력 2018.11.09 17:07:42 | 최종수정 2018.11.09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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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 해설위원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자리한 팬타지움에서 한국 대표팀의 A매치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한주형 기자]

스포츠 해설위원은 시청자에게 경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주 업무다. 그러다 보니 그 종목 선수 경험이 있는 이들이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얘기가 좀 다르다.

각 방송사는 선수 출신 해설위원을 앞세워 경쟁을 하지만 골수 축구팬들은 비선수 출신 해설위원을 선호하기도 한다. 비록 생생한 경기 경험은 없을지언정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매끄러운 말솜씨로 매력을 발산하는 이들이 많아서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48)은 그런 비선수 출신 해설위원 중에서도 대표주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히지 않을 만큼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수십 년 전 은퇴한 선수까지 알아보는 '축구 덕후'스러움으로 무장한 그를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위치한 축구 테마파크 풋볼 팬타지움에서 만났다. 서울대 해양학과를 졸업하고 철학으로 진로를 바꿨다가 다시 축구계로 발을 돌린 그는 해설뿐 아니라 각종 강연과 대학 강의 등으로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인사하는 목소리만 듣고도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그에게 축구해설위원으로서의 삶을 물었다.

―TV에서 자주 듣던 목소리를 이렇게 들으니 더 좋다. 언제 축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궁금하다.

▷TV가 집집마다 있던 시절은 아닌데 우리 집에 전화는 없어도 TV가 있었다. 당시에는 AFKN 등 채널이 4개밖에 없어서 김일, 천규덕 등이 등장하는 프로레슬링을 많이 봤다. 축구도 많이 봤는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축구 중계는 1976년 차범근 감독이 박스컵에서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했던 경기다. 부산교통공사 감독을 오래 하셨던 박상인 감독이 한 골을 넣어서 1대4로 뒤지고 있다가 차 감독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4대4 무승부를 일궈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축구의 역사적 명경기 중 하나가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다. 보는 것 외에 실제로 축구를 즐기지는 않았나.

▷어릴 때는 많이 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야구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축구가 골목마다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던 시절이다. 공 하나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아닌가. 한 반에 80명이 있고 오전·오후반도 있었는데 공 하나로 모두 같이 놀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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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나.

▷어려서 축구를 그리 잘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취미로 즐겼다. 동북중학교를 다니다가 중동중학교에 전학을 가서 졸업했는데 둘 다 전통의 축구 명문이어서 그런지 나를 선수 출신으로 보는 분들이 간혹 있다. 운동보다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기에 축구선수를 꿈꾸지도 않았다.

―공부를 잘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화제가 됐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시 모의고사에서 1등 한 번 하고, 고등학교 때는 아이큐 155가 나왔던 적이 있기는 하다. 예능 작가님이 그런 과거를 발굴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웃음).

―그래서 서울대 해양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인가. 과는 어떻게 선택했나.

▷내가 원래 약간 좀 특이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전공도 해양학을 하다가 철학을 다시 하다가 결국 예체능에 종사하는 사람이 됐다. 그냥 해양학과가 이름 자체가 멋있어서 고등학생 때 빠졌다. 선배들 보면 남극에 있는 세종기지 대장을 한 분도 많더라. 나도 그런 연구를 해볼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병역을 마친 뒤에는 철학에 빠져서 해양학 공부를 게을리하고 '해포자'가 됐다. 그래도 최근 서울대 해양학과 50주년 행사에 나를 사회로 불러주기도 했다.

―미국 유학은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나.

▷미국에는 철학 공부를 하러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과학사·과학철학으로 택했다. 요즘 말하는 통섭이나 융합의 과정이었다. 2000년에 미국으로 떠났다.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로 가서 공부를 하면서 주말에는 혼자 열심히 축구를 봤다.

―결국에는 그 유학도 그만두고 축구를 위해 귀국하게 됐는데 그 상세한 과정이 궁금하다.

▷당시 언론사 게시판에 축구 칼럼도 쓰고 그랬다. 소위 '네임드'가 되면서 언론사에서 해외 축구통신원을 하라고 연락이 왔고, 스포츠지 필진 요청도 왔다. 당시만 해도 철학 교수를 하겠다는 생각이었기에 다 거절했지만 스포츠 플라자라는 작은 사이트에서 꾸준히 요청을 해서 그냥 무료로 축구 글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돈을 벌 것도 아니고, 다른 언론사에 쓰느니 여기다 쓰자는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게 순수 축구 웹으로는 지금도 최대 규모인 사커라인으로 발전했다.

―결국 사커라인 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해 귀국했는데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2002년 여름 2년 만에 공부를 그만두고 귀국할 때 같은 비행기에 세네갈 총리가 같이 탔던 기억이 난다. 2002 한일월드컵 개막전이 '프랑스 대 세네갈' 경기였는데 그곳에 가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축구와 연이 있던 셈이다. 웹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 친구 셋이서 사이트를 공동 운영하고 축구 글을 쓰는 필진을 모았다. 그 당시 필진 중 80~90%가 실제로 지금까지 스포츠 관련 업계에서 종사하고 있을 정도니 나름 괜찮은 사이트였다. 지금은 인터넷 커뮤니티지만 당시만 해도 포털 사이트에서 우리 글을 가져다 쓸 정도로 축구 언론 역할까지 했던 것이다. 서버를 유지하고 사진 사용료를 내는 등 사비를 털어 쓰면서 운영했지만 수익성이 없으니 부모님께서도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귀국 후 1년 만에 해설 일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첫 해설을 했던 경기는 기억하고 있나.

▷2003년 MBC에서 전화가 왔다. 당시 서형욱 해설위원이 영국 리버풀로 축구 유학을 가면서 생긴 빈자리를 메우게 됐다. 비선수 출신 해설이 등장하던 초기이고, 우리 사이트 필진이 '형이 이참에 하셔야 후배들한테도 좋다'고 하는 통에 수락하게 됐다. 사실 말을 못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덤벼들 수 있었다. 첫 경기는 네덜란드 리그였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에서 맹활약한 박지성과 이영표를 데리고 간 PSV 에인트호번 팀 경기를 중계했다. 방송일이라는 게 처음 한 번을 잘하면 그대로 가고, 아니면 곧바로 잘릴 수도 있는 건데 다행히 괜찮게 보였는지 그대로 해설일을 하게 됐다.

―경기를 앞두고 어떻게 해설 준비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건 A팀과 B팀의 경기가 있다면 두 팀 간 과거 경기를 체크해보는 것이다. 다른 것보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물론 축구 규칙도 잘 알아야 하고 말주변 등 방송 능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두 팀의 최근 경기다. 이 경기들을 안 보면 해설자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적어도 3~5경기는 봐야 한다. 그래야 감독의 교체 패턴이나 경기에서 자주 쓰는 전술을 알 수 있다. 시청자들의 수준도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단순히 틀리는 실수 정도가 아니라 거짓말을 하게 되니 문제다. 아마추어 경기처럼 생소한 경기를 해설할 때는 주변에 물어보고라도 들어가야 한다.

―해설을 할 때 반드시 해야 하거나 피해야 하는 그런 말이 있다면 뭘까.

▷방금 답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가장 지양해야 하는 것은 가식적인 해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해설이다. 모를 때는 '아 저도 잘 모르는 부분이네요' 하면서 솔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다. 오늘 처음 본 선수를 두고 다년간 관찰한 것처럼 말하는 해설을 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축구 지식 1인자로 잘 알려져 있다. 자료를 책상 위에 놓지 않고도 해설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었는데.

▷실제로는 기록 등 축구 자료를 많이 들고 다니는 편이다. 평소에는 신발주머니 하나를 준비해 거기에 자료를 넣어서 다닌다. 준비를 많이 하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과정에서 가급적이면 보지 말고 머리에 미리 넣고 해설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없어도 해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료를 보면서 하다 보면 중요한 장면을 놓칠 수도 있지 않나. 축구처럼 몇 초 사이에도 상황이 급변하는 스포츠는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또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자료를 많이 준비하다 보면 그 내용을 꼭 인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런 유혹을 이겨내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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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 해설위원이 축구공을 던지며 즐거워하고 있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축구해설가이다. [한주형 기자]

―평소 기준으로 일주일에 몇 경기 정도를 중계하는가.

▷요즘은 기존에 해오던 스페인 라리가 중계를 하지 않게 돼서 중계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가장 많이 할 때는 한 달에 16~17경기까지 해본 적이 있다. 유럽 축구 중계를 주말에 2~3경기 정도 하고, K리그 중계를 하고, 평일에 아마추어 경기까지 하면 일주일에 5개도 가능하다. 그냥 보는 경기는 한창 많이 볼 때는 내 중계를 포함해서 일주일에 15~20경기씩 볼 때도 있었다. 요즘은 나이를 먹다 보니 10개 정도로 좀 줄기는 하더라.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캐스터는 누구던가.

▷데뷔를 할 때는 최창섭 캐스터와 함께했다. MBC와 KBS를 다 따지면 30명 정도는 호흡을 맞춰봤던 것 같다. 요즘 젊은 캐스터 분들은 반대로 내가 데뷔를 도운 분도 많다. 나머지 분들이 섭섭해하실지도 모르지만 제일 잘 맞는 캐스터를 꼽자면 최승돈 아나운서를 뽑고 싶다. 일단 구속이 빠르다. 입의 속도가 빠른 거다. 내가 말이 빠른 스타일이다 보니 잘 맞는다. 서로 말 속도가 비슷해야 말을 들어갈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다. 말이 너무 느린 분들은 오히려 내가 해설할 타이밍을 놓칠 때도 있다.

―최고의 해설위원들을 뽑는다면 누구일까. 롤모델이 있나.

▷고(故) 주영광 선생님이 내 인생 최고의 해설위원이다. 나는 스스로를 해외축구 0세대로 규정한다. 해외축구 1세대는 1990년대에 처음으로 유선 방송이 나왔을 때 그때 처음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 해외 축구를 접하면서 마니아가 된 세대다. 그런데 나는 1970년대 분데스리가 녹화 방송부터 본 세대이니 0세대라는 표현을 쓰는 거다. 주 선생님은 1954 스위스월드컵에 나선 선수 출신이신데 1970년대에 해설위원으로 활약하셨다. 요즘은 시청자들에게도 해외 축구가 워낙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녹화 중계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분이셨다. 한 분을 더 꼽자면 이용수 세종대 교수다. 어린 팬들은 이 교수님의 해설이 평이하고 졸리다고도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모범적인 해설이다. 사실 해설을 하다 보면 유행어라도 만들고 싶고 자신을 내세우고 싶을 수 있는데 이 교수님은 안 해야 될 것을 먼저 생각하는 해설자다.

―15년 이상 해설을 해왔는데 그동안 힘들거나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면.

▷무슨 경기인지 밝히지는 않겠지만 킥 오프하고 30초 동안 양팀을 반대로 얘기한 적이 있다. 순간적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착각이 더 길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최근에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일본과 벨기에의 16강전을 중계하면서 벨기에가 골을 넣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가 공영 방송에서 적절하지 못한 편파 해설이라는 지적을 받은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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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어떤 경기일지도 궁금하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바로 직전에 해설했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고, 다음에 해설할 경기가 가장 중요한 경기라고 대답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의미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경기는 두 경기 정도 꼽고 싶다. 스페인 라리가 중계를 할 때 세비야 팀에서 뛰던 안토니오 푸에르타 선수가 심장마비로 죽은 경기를 해설했다. 경기 중에는 깨어나서 걸어나갔는데 다시 쓰러지며 세상을 떠나 마음이 많이 아팠다.

게다가 그 경기가 원래 스케줄에 잡혔던 경기도 아니었는데 우연히 그 경기를 하게 됐던 터라 기억에 더 남는다. 그 이후 에스파뇰에서 뛴 다니 하르케라는 선수도 심장마비로 사망한 일이 겹치며 스페인 선수들이 이런 아픔들을 이겨내고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우승할 때 생각이 났다.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해설위원이라고 해도 좋아하는 팀과 선수는 있을 것 같은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아스널 팀을 좋아한다는 것은 팬들이 잘 아신다. 원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바뀌게 되었다. 요즘 호감을 가지고 있는 팀은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다. 현대 축구의 수비 전술을 다시 쓴 팀이라고 생각한다.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라는 양강 틈바구니를 치고 올라온 것 자체가 축구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좋아하는 선수는 조광래, 차범근 등과 함께 뛰면서 폭발적인 돌파력을 보여줬던 윙어인 신현호 선수, 1990년대 야생마처럼 긴 머리를 휘날렸던 김주성 선수를 꼽고 싶다. 해외 선수로는 조지 베스트나 디에고 마라도나, 데니스 베르흐캄프처럼 한순간에 분위기를 뒤바꿀 수 있는 마법사 같은 선수를 좋아한다.

―축구선수가 해설을 하는 게 더 긍정적이라고 밝혔는데 그 이유가 알고 싶다.

▷그 종목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몸으로 경험해본 사람이 당연히 더 좋은 해설을 할 수 있다. 비선수 해설가는 그 내면을 알기가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선수 출신 해설자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다만 선수 출신도 연구를 해야 한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유명 선수 출신도 축구 논문을 써야 비로소 감독이 될 수 있다. 해설을 하기 위해서도 공부를 하고 여러 경기를 봐야 한다.

―요즘에는 축구선수 출신 해설, 전문 해설, 캐스터 3인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 구조가 잘되기가 쉽지 않다. 축구 특성상 전환이 빠른데 2명을 넘어가면 말을 나눠 가지기가 어렵다. 중구난방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어느 한 사람이 상당 부분 양보를 적절히 잘해야 가능한 구조다. 예전에 해봤는데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내 비율을 20% 정도로 낮춰 보니 그나마 좀 들을 만하더라.

―각 방송사들 시청률 경쟁도 엄청 심한데 부담스럽지는 않나.

▷방송국에서 힘들여 섭외한 이영표, 박지성 등 선수 출신 해설들이 한국 경기를 주로 맡아주기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대중적인 시청률을 그들이 잡아준다면 마니아들 평판을 잡는 일이 내 몫이다. 이 자리를 빌려 이영표 위원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웃음).

―본인이 생각하는 해설위원의 근본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축구 경기 90분을 보고 난 시청자가 "나도 아는 얘기만 한다" 혹은 "나도 아는 걸 해설자가 모르네" 하는 생각이 들면 그건 실패한 방송이다. 그래도 90분 동안 지켜봤는데 1, 2개라도 유익한 점을 얻었다고 느껴야 한다. 그것은 축구 역사에 관한 정보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상황에 대해 이해도를 높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살면서 인생 경로를 자주 바꾼 사람인데 하다 보니 해설을 제일 길게 하고 있더라. 방송국과 시청자가 나를 필요로 할 때까지는 해설을 하고 싶다. 해설 외에 한국 축구계에 확실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꿀지도 모르지만 과연 그런 기회가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비선수 출신이면서 해설위원 등 스포츠 관련 직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대학 등지에서 강연도 많이 하는데 축구 해설가가 되고 싶다며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긍정적인 얘기를 해주지는 않는 편이다.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해설을 시작할 때는 포털에 해외 축구 기사가 하루에 10개 남짓 올라오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기성 언론사들이 해외 축구 기사를 잘 쓰지 않던 때였기에 내게도 이름을 알릴 기회가 올 수 있었다.

또 현장에서 일하는 매력은 있지만 근무시간도 불규칙적이고 수입도 일정하지 않을 수 있기에 PD나 기자 등 다른 직업을 추천하곤 한다. 나는 해설은 직함이지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한준희 해설위원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분데스리가 중계를 보면서 축구광으로 자랐다. 1990년 서울대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3학년 때 과학철학에 심취해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틈틈이 써왔던 축구 칼럼이 주목을 받으며 결국 축구계로 방향을 틀었다. 2003년 MBC ESPN 축구해설가로 커리어를 시작한 뒤 2005년부터는 KBS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월드컵, UEFA 유럽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아마추어 축구까지 다양한 축구 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 축구 해설위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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